설교요약 :
예수님의 사랑, 혈기를 열기로 바꾸다
예수님의 사랑, 혈기를 열기로 바꾸다(2026030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예수님의 아픈 손가락 요한
12제자가 있었지만 예수님이 특별히 더 마음 쓰시던 제자가 있었다. 바로 요한이다. 요한의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다’,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이다.
이러한 이름에 걸맞게 요한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불렸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표현한다. 요한의 이러한 자기 표현은 ‘사랑의 사도’라는 사명을 받은 자신의 삶을 고백하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그가 예수의 사랑이 필요했던 제자라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이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이 필요했고 주님의 사랑으로 요한은 끝내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의 삶을 살펴보고 왜 주님께서 특별히 사도 요한을 사랑으로 살피셔서 그를 사랑의 사도로 세우셨는지 알아갈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도 그 받은 사랑으로 이 시대에 사랑의 사도가 되어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길 바란다.
요한의 출신과 배경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중 아버지와 어머니, 가정의 배경이 자세하게 소개되는 유일한 제자이다. 요한의 아버지는 세베대, 그의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그의 집에는 배와 품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상당한 재력이 있었던 것 같다. 특별히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필요한 것들을 재정적으로 도왔던 것을 보면, 이러한 주장에 더욱 설득력이 실린다.
요한 집안의 배경은 예수님이 붙잡히시던 밤에 요한이 대제사장 집으로 들어간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요한의 집안은 대제사장과도 친분이 있었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요 18:15-16).
또한 많은 학자들이 사도 요한은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추정한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요 1:35-37).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모든 사역에 함께하였고 초대 교회에서도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김 받았다(갈 2:9).
특별히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 불릴 만큼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고, 그 자신도 사랑을 가르치고 사랑을 실천하였다.
요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예수님의 제자 중 순교 당하지 않은 유일한 제자라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요한은 밧모섬 유배 중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고, 그 이후 에베소에 정착하여 90세까지 교회의 기둥으로 성도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함으로 예수님의 복음과 그 복음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삶의 원리, 그리고 그 복음의 결과로 이룬 종말론적 천국을 성경 속에 기록하였다. 그가 기록한 성경이 많고 그의 삶도 길었기에 우리는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으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만들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초기의 요한: 다혈질, 배타적, 성공지향적 인물
초기의 요한을 보면 과연 이 사람이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1) 다혈질의 배타적인 요한
요한의 초기 모습 가운데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사마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눅 9:54-56).
이 사건을 통해 보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모두 다혈질이고 배타적인 성경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두 형제에게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주셨다(막 3:17).
2) 경쟁심이 강한 요한
또한 요한은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이를 금지시켰다. 요한은 우리 편이 아니면 어떤 선한 일을 해도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눅 9:49-50).
3) 성공과 명예의 욕구가 강한 요한
요한은 명예에 대한 욕망도 높았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5-37).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나아가 무엇이든지 자신들이 구하는 바를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한다. 이들이 이렇게 당당한 이유는 그들의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필요 경비를 돕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제자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켰다(마 20:24).
주님 품에서 배운 사랑
사랑의 사도가 되기에는 너무 부족한 요한을 주님은 품에 두셨다. 성경은 요한을 가리켜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이며, 유월절 마지막 만찬 중에는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 있었다고 기록한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요 13:25).
그런데 한 사람의 품에 있다는 표현은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성경은 하늘 아버지가 아들 성자 예수를 그 품에 품고 계셨다고 한다. 아들을 품으며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네가 저 많은 죄인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저들을 구원할 수 있겠니?’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해야 하는 애끓는 사랑을 아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은 요한을 품으셨다. 사랑 없는 그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을 가르치시고 느끼게 하셨다. 그 강퍅한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심겨지길 간절히 바라셨다.
이러한 주님의 마음은 결국 요한을 변화시켰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의 광경을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요한은 제자 중 유일하게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그 곁을 지킨 인물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모시기로 결단한다. 요한은 자신의 이 모습을 요한복음에 기록하며 예수님이 사랑이 자신을 얼마나 놀랍게 변화시켰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주님의 사랑이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말씀하신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요한은 예수의 제자된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이것이 예수께서 주신 새로운 계명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를 더욱 자세히 말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5-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온전히 이루셨다. 바울은 요한처럼 예수님의 육신의 품에 안겨 그분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성령님이 오셔서 그분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예수의 사랑을 얻는 길을 여셨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요한은 그의 모든 신학을 사랑으로 풀어간다. 그래서 그의 서신서에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는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이 ‘사랑’이라는 것을 자신의 온 삶을 통해 외쳤다(요일 3:11, 23, 4:7, 8, 11, 12).
맺음말
성령의 역사로 주님의 사랑이 지금도 우리 심령 가운데 부어지고 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들은 주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안다. 그리고 그 사랑대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 사랑을 받은 여러분이 이제 이 시대의 사랑의 사도가 되어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바란다.